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창덕궁 관물헌 (문단 편집) == 이름과 현판 == '관물' 뜻은 '만물(物)을 보고(觀) 그 이치를 깊이 연구한다'로, [[중국]] [[북송]]의 사상가 소옹(邵雍)의 〈관물편〉에서 인용했다. 《[[동궐도]]》에는 '유여청헌(有餘淸軒)'이란 이름으로 나와 있으며 이는 '넉넉하고 맑은 마루'란 뜻이다.[[http://www.opinionnews.co.kr/news/articleView.html?idxno=7808|#]] 그런데 정작 [[현판]]의 [[글씨]]는 '관물헌(觀物軒)'도, '유여청헌(有餘淸軒)'도 아닌 '집희(緝熙)'이다. 1864년(고종 1년) 1월에 13살[* 만 11세.]이었던 [[고종(대한제국)|고종]]이 직접 쓴 것이다. '계속하여(緝) 밝게 빛난다(熙)'는 의미로, 즉위한 지 얼마 안 된 [[소년]] [[왕]]이 앞으로 [[국가]]를 잘 이끌어가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듯 하다. 어릴 때 쓴 글씨라서 그런지 현판 글씨 치고는 서툴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. --하지만 지금은 성인들도 저 정도 못 쓰는 사람 많다.-- 참고로 [[경희궁]]의 [[동궁]] 중 아예 정식 이름이 [[경희궁 집희당|집희당]]인 [[건물]]이 있다. ||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" [[파일:집희.jpg|width=100%]]}}} || || {{{#gold ''' 고종이 직접 쓴 '집희(緝熙)' 현판[* [[https://www.cha.go.kr/newsBbz/selectNewsBbzView.do?newsItemId=155672781§ionId=ocp&pageIndex=11&mn=NS_01_02&strWhere=&strValue=&sdate=&edate=|사진 출처 - 문화재청 문화재청 《궁궐의 현판과 주련 - 창덕궁》: 〈성정각 권역〉.]]] '''}}} ||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